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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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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별 2019. 12. 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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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심재철 의원이 12월09일에 선출이 되었습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내년 총전까지 제 1야당의 대여 협상과 총선 공약 마련 등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경선을 통해 심재철의원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심재철 원내대표

 


심재철 프로필 


1958년 광주 금남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때 돌아가셨다. 어려운 형편 속에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7남매를 키우셨다.
가난한 형편임에도 공부를 잘해 197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광주일고를 졸업한 1977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유신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심재철은 서울대 입학 후 운동권이 되었으며 77학번 동기인 유시민과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섰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당시 '서울의 봄' 정국에서 신군부에 맞서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학생운동 세력의 대표인물로 떠올랐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앞에는 서울대, 고려대 등 전국 18개 대학에서 온 학생 10만 명이 모여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였는데, 심재철은 이때 대학 총학생회장단 대표를 맡았다. 해가 저물면서 시위대는 철야농성을 하느냐, 아니면 자진해산을 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신계륜은 철야농성을 주장했지만, 심재철은 서울대 학생처장 이수성의 권유에 따라 자진해산을 주장했고, 결국 10만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김대중 사건
24인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대부분은 5월 17일에 연행되었다. 나머지는 6월 15일 이석표 체포, 6월 16일 이신범 체포, 6월17일 전국에 심재철 지명수배령이 내려지고 6월 18일 설훈, 송기원 체포, 며칠 후 이해찬, 조성우 체포, 6월 30일 심재철이 체포되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 출석한 심재철 자신이 검찰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거짓 자백을 했으며 한통련 사건과 관련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것은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간첩의 증언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실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중 대부분이 이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책을 써 자신들이 고문에 굴복하지 않을수 없음을 고백했다.

 

심재철 원내대표

 



심재철 활동
이후 1985년 교사에 임용되어 동대문여자중학교[14]에서 영어교사로 지내다가 MBC에 입사하였다. MBC방송국 보도국 기자를 지냈으며 1988년 방송사 최초 MBC노조를 만들어 초대 전임자를 지냈고 1992년 MBC방송민주화 투쟁 중 업무방해·노동쟁의조정법, 징역8월·집유2년 (1993.1.20)을 선고받는다.

당시의 상황은 이미 군부 독재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결정적으로 집행유예는 말 그대로 집행을 안 한다는 뜻이니 미결수로 구치소에 수감된 시기를 옥고를 치른 것으로 한 셈이다.

 

 

심재철 원내대표

1995년 12월에 신한국당 부대변인, 안양 동안 갑구 지구당 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6대 총선에서 원내진입에 성공해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 국무총리(이한동, 장상 후보자) 인사청문위원, 공적자금특위위원 등을 지낸 이래 17대 재선 때 전략기획위원장, 원내수석 부대표, 홍보위원장을 지냈고 18대 3선때는 경기도당 위원장, 정책위 위원장, 국회예결위 위원장 19대 4선 때는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20대 때는 국회 부의장에 당선되는 등 현재까지 총 32개의 국회직 29개의 당직을 역임하였다.

 

 

정작 서울역 회군의 주동자 심재철은 군사정권 당시 독재와 싸운다는 미명하에 서울대 학내에서 프락치로 의심되는 자교 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생 등 4명을 붙잡아 가두고 폭행했다. 이 사건 때문에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던 유시민이 그 폭력 행위를 행했다는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06년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가 지명되어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이때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당했던 전기동(당시 관악구청 소속 공무원)이 "나를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1인 시위를 하여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을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은 "유시민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럼 누가 폭행했냐"고 묻자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을 돌려 보내며, 이 사건은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심재철 원내대표

 

심재철 원내대표